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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책

매일 읽겠습니다, 황보름

by Mar liso 2022. 7. 18.

나는 책이나 서점을 주제로 하는 책에 쉽게 손을 뻗치는 편이다. 이번 책도 그랬다. 쉽게 손을 뻗었다. 마치 친구가 두런두런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처럼 '황보름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읽어보고 싶은 책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 달콤한 로그아웃, 알렉스 륄레

* 침대와 책, 정혜윤

*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 홀브룩 잭슨 (글)

* 장서의 괴로움

 

- 일만 하는 노동자, 회사생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노동자에서 다시 나로 돌아올 이 시간을 소중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어두운 터널로 향했던 멍한 시선을 거둬들여 책을 읽었다. 훼손된 영혼을, 피곤한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침대에서 배깔고 엎드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쓸 때, 나는 느낀다. '다시 나로 돌아오고 있음을'

 

책에서  프랑스 과학자 레옹 뒤몽은 뇌 가소성을 '흐르는 물이 파놓은 수로'라고 표현했다.흐르는 물은 더 넓고 깊게 진행하면서 스스로 수로를 만들어 낸다.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흐를 때는 이전에 스스로 파 놓은 길을 따라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부 물체에 대해 받은 인상들은 우리 신경체계 속에서 적합한 길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이 같은 살아 있는 통로들은 한동안 막혀 있다가도 비슷한 외부 자극을 받을 경우 되살아난다.

 

예를 들면, 이번에 내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다고 하자. 이 책을 다 읽고 내용을 음미하는 데만도 적어도 1주일, 아니 2주일이 걸릴 테다. 그리고 아마 몇 년간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로 삶을 연명하던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간혹 떠올릴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나 역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로 하루하루를 버틱 ㅗ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리라. 두 사람은 평생 내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지금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는데, 채식주의자를 읽고 난 다음 느낌이 이랬다. '이 책을 다 읽고 내용을 음미하는데 며칠은 걸리겠구나'

 

 

정혜윤의 <<침대와 책>>은 제목만으로 이미 일상성과 낭만성이 만나는 최고의 지점에 도달한다. 집요한 다독가가 풀어놓는 감각적인 서사 앞에서 나는 낮 동안 덮어썼던 사회적 자아를 벗어던지고 기쁘고도 수줍게 낭만적 자아를 움켜쥔다. 밤에 나는 이런 문구를 만나면 짧게 웃는다.
"피곤과 불안과 염려와 설렘과 기대와 내일의 일을 책으로 대치해 버리는 것은 나의 가장 오래된 버릇이니까."
침대와 책과 밤, 그리고 조명만 있으면 우리가 있는 이곳이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어느 골목, 어느 카페가 된다. 우리는 밤마다 낭만적인 인간으로 되살아나 어느 아름다운 이미지속 인물이 된다. 다른 누군가에게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하지만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책을 읽는 것뿐인 한 인간이.

 

"비록 지금은 서글픈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연히 내 손을 잡아 준 당신 덕분에 나는 다시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  <<브루클린 풍자극>>이 내게 건네준 메시지다. 이 소설을 읽고 기대했던 미래가 초라한 현실이 되어 나타나더라도 너무 많이 싦아하진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했다. 나락 어디쯤에 서 있더라도 그 옆에 농담을 주고받을 친구가 있다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테니까. 첫 문장이 "나는 조용히 죽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인 소설이 한 줌 희망을 쥐여 주었다는 사실도 내가 이 책에, 이 책을 쓴 폴 오스터에 반한 이유다.

 

그는 인터넷에서 글을 읽을 때 사람들 눈동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했다. 책을 읽을 때와 달랐다고 한다. 책은 좌에서 우로 한 줄 한 줄 읽는 데 비해 웹상에서는 F자 형태로 글을 읽었다. 첫 세 줄은 꼼꼼히 읽지만 그 다음부터는 죽 훑으며 마지막 줄까지 거침없이 내려갔다. 그러고 사람들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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