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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책

황보름,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by Mar liso 2022. 4. 29.

남자들 다 그래, 결혼하면 말이 없어져. 나는 지금 이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있다는 의미의 침묵이지

'결혼생활'을 '삶'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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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 씨는 지루한 삶은 버려야 하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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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 씨는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네?

전 없다고 생각해요

...

없으니까 각자 찾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찾은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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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이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의 삶과 완전히 다른 내일의 삶.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남자의 내일은, 꿈을 이룬 이의 전형이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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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노동의 한계를 초과하면 결국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걸 영주는 잘 알았다. 좋아하는 일도 이럴진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엄청 많이 해야 한다면? 일이 고역이 될 것이다. 일하는 재미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일의 양이 얼마나 적당한가이다. 그렇기에 영주는 무엇보다 영주가 해야 하는 일, 민준이 해야 하는 일이 한계를 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민준은 독서 모임과 북토크가 있을 때만 30분 더 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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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편지 밖에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 조해진, 『빛의 호위』, 창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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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생각했어요.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만 골몰하지 말자. 그럼에도 내겐 여전히 기회가 있지 않은가. 부족한 나도 여전히 선한 행동, 선한 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실망스러운 나도 아주, 아주 가끔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하고요. 이렇게 생각을 하니 조금 기운이 나네요. 앞으로의 날들이 조금 기대도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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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는 건 우리 삶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 삶을 이끄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선택인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민준은 문득 자기 역시 그 때 포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벗어나겠다는 선택.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보면서도 이런 생각은 이어졌다. 세이모어 번스타인 역시 피아니스트의 삶을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아닌 삶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화려한 명성을 쌓던 세이모어가 피아노를 치는 대신 피아노를 가르치고자 선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여든 살이 넘은 세이모어는 그때의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민준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처럼 자신 역시 그때의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민준에게 필요한 건 이런 다짐이 아니었다. 민준에게 지금 필요한 건 용기였다. 자신에게 실망한 사람들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한 선택을 밀고 나갈 굳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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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려면 그 앞에 불협화음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음악에선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도 음악과 같다고요.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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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사람을 대하는 긴장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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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람을 소진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 일에만 함몰된 삶이 행복할 리 없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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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다는 느낌. 일에서 중요한 건 바로 이 느낌이 아닐까 하고 민준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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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함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괴로운지 너는 모르겠지! 하루 종일 미친 듯 일해도 남는 건 하나 없는, 아니 남는 건 피로밖에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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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행복은 먼 과거에나, 먼 미래에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바로 내 눈 앞에 행복이 있는 거였어요. 그날의 그 맥주처럼, 오늘의 이 모과차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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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데 책의 물성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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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일의 흐름을 놓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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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는 좋아하는 일을 5년 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5년 했다. 어떤 삶이 더 나았을까? 글쎄,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삶이다. 더 편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서가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공허해졌고, 공허함을 이기려 한국어에 몰입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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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은 커피를 내리면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실력이 늘었다. 커피 맛이 좋아졌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속도로, 이런 마음으로 성장해도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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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삶의 태도예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의 삶의 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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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느라 내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사랑을 포기하고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지금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언제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내 삶의 방식을 위해서 또 사람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곁에 두기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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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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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하루를 잘 보내는 건 인생을 잘 보내는 것이라고 어딘가에서 읽은 문구를 생각하면 잠자리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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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나의 '삶'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이런 내게, 이 책은 마치 나와 나란히 서서 묵묵하게 길을 걸어주는 친구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되살아나기도 했다.

 

나도 삶에 '애정'을 갖고 '성장'하고 싶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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