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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책

00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by Mar liso 2022. 3. 28.

 

 

 

 

 

p.56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아침 9시경이 되었고 계절의 첫 안개가 내리고 있었다. 짙은 초콜릿 빛깔 장막이 하늘을 뒤덮으며 낮게 깔려 있었다. 바람이 끊임없이 휘몰아치며 포위된 운무를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차가 거리에서 거리로 낮은 포복으로 지날 때마다 어터슨은 어슴푸레한 빛이 다양한 모습과 색조로 시시각각 신비롭게 변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쪽에선 저녁이 깊어질 무렵과 같은 어두움이었다가, 저쪽에선 마치 큰 화재의 기이한 불빛처럼 선명하게 타오르는 갈색의 빛이 빛나기도 했다. 그러다 또 잠시 안개가 걷히고 가느다란 한 줄기 아침 햇살이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기도 했다. 어터슨은 이렇게 변화하는 희미한 빛 속에서 본 소호의 음침한 거리가 진창길과 그 위를 걷는 더럽고 단정치 못한 행인들, 그리고 한 번도 꺼진 일이 없고, 또한 이 음울한 어둠의 재침략에 맞서 새롭게 불을 밝힌 적도 없는 가로등으로 인해 무슨 악몽에 나오는 도시 같다고 생각했다.

 

p.108 지킬 박사와 하이드

우리 인간은 인생의 불운과 고난을 영원히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 그 짐을 던져버리려고 시도하면 그것이 더욱 낯설고 더욱 끔찍한 무게로 되돌아와 우리를 짓누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p.142 시체 도둑

그의 마음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의 운명이나 숙명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저속한 야심의 노예였다. 차갑고 가볍고 이기적인 그도 어느 정도는 신중한 면모가 있어서 불편해질 정도로 술에 취한다거나 벌 받을 도둑질은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그의 도덕성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p.147 시체 도둑

"의심과..."

"증거는 다르다고. 그래, 나도 알아. 자네와 '이것'이 이렇게 만나서 유감이군." 지팡이로 시체를 툭툭 치며 그가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 차선책은 이걸 알아보지 못하는 척하는 거야." 그가 냉정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누군지 모르겠군. 자네는 원하는 대로 하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겠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 나처럼 처신할 걸세. 그리고 K가 우리에게 바란 도움도 그런 것이라 생각하네. 문제는 왜 그가 우리 두 사람을 조교로 뽑았는가 하는 거야. 그리고 내 대답은 참견하고 잔소리해 대는 늙은 마누라 같은 인간들이 싫었으니까이고."

 

p.154 시체 도둑

그 주가 끝나기 전 맥팔레인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페츠는 공포에서 벗어났고 굴욕은 잊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용기가 자랑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다시 조작하여 그 사건들을 되돌아볼 때 불건전한 자만심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p.170 오랄라

내가 보기에 그가 하는 대화는 마차를 모는 이들이 하기 마련인 얘기 같았다. 마부는 시간의 대부분을 지적인 공백 상태에서 보내고, 친숙한 시골 풍경을 계속 스쳐 지나가며 지내지 않는가.

 

p.172 오랄라

이 곳에 오자 펠리페의 기분도 좋아졌는지 그는 가성으로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음악적 감각이 매우 둔해서 멜로디도 음조도 전혀 맞지 않았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불러대는 노래였지만 마치 새들의 노래처럼 자연스러웠고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이 예술과는 거리가 먼 노랫소리의 마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들으면서 뭔가 제대로 된 노래가 나오길 바랐지만 계속 실망만 거듭되었다. 마침내 나는 그에게 무슨 노래를 부른 것인지 물었다. "아!" 그가 소리쳤다. "그냥 노래한 거예요!" 무엇보다 나는 그가 짧은 간격을 두고 같은 음을 지치지 않고 반복하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나무의 모습이나 고요한 연못에서 그려내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그런 행복한 만족감을 호흡하는 것처럼 보였다.

 

p.205 오랄라

결국 나는 그녀의 눈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그녀가 그 대단히 아름답고 아무 의미도 깃들어 있지 않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것이 밝은 햇빛에는 활짝 열려 있지만 인간의 질문에는 닫힌 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잠깐 사이에도 커졌다 줄어들었다 생동감 있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p.206 오랄라

열린 창가에 앉아 산을 내다보긴 했지만, 경치에 주목하기보다는 깊고 빛나는 꿈에 잠겨 환상 속에서라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p.219 오랄라

"당신은 이 집에 있는 우리 조상들의 초상화를 보셨나요? 우리 어머니와 펠리페 오빠를 보지 않으셨나요? 당신 침대 옆에 걸린 그림을 보지 않으셨나요? 저 초상화의 주인공은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살아생전 악행만을 일삼은 사람이죠. 하지만 다시 보세요. 우선 제 손이 저기 있어요. 제 눈과 제 머리도 저기 보인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 것이고 저는 무엇인가요? 이 불쌍한 제 육신의 곡선이(당신이 사랑하는, 실은 당신이 저를 사랑한다고 맹목적으로 꿈꾸는) 제 것이 아니라면, 제가 만들어 보이는 몸짓이 제 것이 아니라면, 제 목소리의 음색도, 제 눈의 표정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것이라면? 그 다른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그들도 제 눈으로 다른 남자들의 사랑을 갈구했고, 그 다른 남자들도 당신 귀에 지금 들리는 바로 이 목소리의 간청을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손이 제 가슴 속에 있습니다. 그들이 저를 움직이게 하고 그들이 저를 잡아당기고 안내합니다. ..... "

 

p.232 오랄라

나는 십자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이미지에 호의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모방적이고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그림을 경멸했다. 그 이미지가 바로 그런 조야한 예이긴 했지만, 그것이 나타내고자 한 의미는 내게 전달되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과 죽음을 축약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영광의 빛이 그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내게 그의 희생이 자발적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십자가는 거기 그렇게 바위 위에 서 있었다. 많은 대로 가에 선 십자가들이 지나가는 이들에게 헛되이 슬프고 고귀한 진실을 설교하듯이, 그것은 진실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이란, 기쁨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연한 산물이라는 것, 고통은 고결한 사람ㄷ르의 선택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잘 견뎌내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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