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카롤린 봉그랑, 밑줄 긋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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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두 달을 가뿐하고 그런대로 즐겁게 보내고 나니, 어느덧 3월이 닥쳐왔다. 다시 모든 것에 싫증이 났다. 요리도 살림도 귀찮게만 여겨져서, 하루 세 끼를 그저 버터 비스킷으로 에우고 말았다. 때로는 올리브 기름에 담근 참치를 통조림통에다가 그대로 먹은 다음, 초콜릿 음료를 마시거나 개암 열매가 든 <밀카> 초콜릿을 먹거나 코트도르 포도주에 우유를 타서 마시고, 다시 참치를 조금 먹곤 했다. 그러고 나면 <모틸리옴> 소화제를 먹기가 십상이었다. 나는 모든 일에 구역질이 났고, 하찮은 일상 잡사에 특히 더 신물이 났다. 세상 전체가 마뜩치 않았고,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뺨을 후려칠 것 같았다. 수위 아주머니에게 전혀 말을 건네지 않았고, 승강기 입구나 식료품 가게에서 라스카르 부인과 마주쳐도 이젠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성미 고약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고 아무와도 다정하게 지내지 못했다. 루카조차도 자기 고추들에 대한 이야기로 나를 짜증나게 했다. 나는 침대 정돈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옷은 다 입은 채 잠을 잤으며, 아파트 안을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 쉐터며 양말이며 팬티며 잡지며 비닐 봉지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고, 쓰레기통마다 쓰레기가 넘쳐 흘렀다. 거친 곡물 가루로 쑨 죽도 전에는 독특한 맛이 있더니, 이젠 자벨수 맛처럼 씁쓸하고 찝찔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용케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그것이 허사가 되면서 마음의 곡예는 계속된다. 내 삶이 바로 그랬다. 고통스러운 고독의 시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헤쳐나가야만 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3, 4주가 흘러갔다. 영영 그 궁지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파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파니는 정신분석요법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치료가 빠를 거라면서 어떤 심리요법 의사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에게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 사람 앞에 가서, <따분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따분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따분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뇌까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건 미치광이 피에로 대신 의사를 상대역으로 하는 어릿광대 놀음일 뿐이었다.
190201